2026-01-20
플랜트 산업

이 이미지는 'Gemini'를 사용하여 제작되었습니다

기술도 자본도 없던 1970~80년대 대한민국이 생존을 위해 선택한 플랜트 산업의 태동기를 20년 차 현역 종사자의 시선으로 담담하게 다룹니다.

플랜트 산업
이 이미지는 ‘Gemini’를 사용하여 제작되었습니다

우리나라 경제 발전의 궤적을 쫓다 보면 반드시 마주하게 되는 장면이 있습니다. 바로 거대한 굴뚝과 복잡하게 얽힌 파이프라인이 장관을 이루는 플랜트 산업의 현장입니다. 저 또한 이 업계에서 20년째 몸을 담고 밥을 먹고 살다 보니, 거대한 구조물들을 볼 때마다 그 속에 담긴 선배 세대의 노고와 땀방울이 남 일 같지 않게 다가오곤 합니다. 지금은 세계적인 수준의 기술력을 자랑하지만, 사실 그 시작은 기술이나 자본 중 어느 하나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척박한 땅이었습니다. 1970년대와 80년대, 우리나라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거대한 공장들을 짓기 시작했는지 그 태동기의 기록을 되짚어보는 일은 오늘날의 경제 구조와 제가 걷고 있는 이 길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실마리가 됩니다.

플랜트 산업의 시작은 생존을 위한 절박함이었습니다

1970년대 한국 경제는 그야말로 벼랑 끝에 서 있었습니다. 두 차례에 걸친 석유파동은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의 경제를 뿌리째 흔들었고, 공장을 돌릴 에너지도, 농사를 지을 비료도 부족한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제가 처음 커리어를 시작했을 때 들었던 옛날이야기들 속의 정부 정책은 화려한 미래를 꿈꿔서라기보다, 당장 먹고살기 위한 생존의 문제에 가까웠습니다. 정유 공장이 있어야 기름을 짜내고, 비료 공장이 있어야 식량 자급이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시 우리에게는 공장을 설계할 도면 한 장, 핵심 부품을 만들 기술 한 점이 없었습니다.

결국 우리는 외국에서 돈을 빌려오고, 그 돈으로 미국이나 일본, 유럽의 엔지니어링 회사들에게 공장을 통째로 지어달라고 부탁하는 이른바 ‘턴키(Turn-key)’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열쇠만 돌리면 공장이 돌아가게끔 다 지어서 넘겨받는 방식이었으니, 사실상 기술 주도권은 모두 외국 기업에 있었던 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틈바구니에서 기회를 찾았습니다. 외국 기술자들이 설계하고 지시하면, 우리 노동자들은 현장에서 몸을 부딪치며 기술을 어깨너머로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현장에서 만난 노련한 선배님들의 실력도 아마 이 시절의 지독한 어깨너머 학습에서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기술 대신 사람을 투입했던 눈물겨운 시공의 역사

당시 한국 기업들이 내세울 수 있었던 유일한 경쟁력은 저렴한 인건비와 압도적인 인력 동원력이었습니다. 기술은 부족했지만 주어진 기한 내에 공사를 끝내는 성실함만큼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습니다. 1970년대 중반, 현대건설이 사우디아라비아의 주베일 산업항 공사를 수주했을 때 전 세계 건설업계가 경악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거대한 구조물을 울산에서 제작해 바다 건너 중동까지 끌고 가 설치하는 무모해 보이는 도전을 성공시켰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의 현장은 그야말로 군대식 문화가 지배적이었습니다. 낮에는 현장에서 땀 흘리고 밤에는 외국 기술자들이 남긴 도면을 복사하고 공부하며 기술을 습득했습니다. 제대로 된 장비조차 부족해 사람이 직접 무거운 자재를 옮기던 시절이었지만, 이러한 무식하리만큼 정직한 시공 능력이 쌓이면서 한국 플랜트의 기초 체력이 만들어졌습니다. 기술을 돈 주고 사 올 수 없다면 몸으로 때우며 배워서라도 내 것으로 만들겠다는 처절한 의지가 곧 태동기의 핵심 동력이었습니다. 제가 20년 전 신입 사원 시절 보았던 현장의 치열함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중압감이었을 것입니다.

중동의 오일머니가 한국 경제의 마중물이 되다

국내에서 쌓은 경험은 곧바로 중동이라는 거대한 시장으로 이어졌습니다. 오일쇼크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중동 국가들은 앞다투어 인프라 건설에 나섰고, 한국 기업들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당시 중동 건설 현장으로 나간 근로자들이 송금한 외화는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를 넘기고 경제 성장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플랜트 건설은 단순히 건물을 짓는 것을 넘어, 국가의 금고를 채우는 전략 산업이었습니다.

하지만 화려한 수주 실적 이면에는 차가운 현실도 존재했습니다. 부가가치가 높은 설계(Engineering)나 핵심 기자재 공급은 여전히 선진국들의 전유물이었고, 우리 기업들은 위험하고 힘든 시공(Construction) 영역에서 수익을 남겨야 했습니다. 많이 일하고 적게 가져가는 구조였지만, 이 과정을 거치며 우리나라는 비로소 플랜트라는 거대한 시스템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 구조를 파악하기 시작했습니다. 1980년대 들어 울산과 여수 등에 대규모 석유화학 단지가 조성되면서 국내에서도 자체적인 플랜트 건설 경험이 축적되었습니다. 제가 가끔 출장을 가는 여수 산업단지의 노후된 설비들을 볼 때마다, 이 나라가 어떻게 이 자리에 왔는지를 체감하게 됩니다.

플랜트 산업의 원동력이 된 패스트 팔로워 전략

돌이켜보면 이 시기의 한국 플랜트는 철저한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였습니다. 선진국들이 수십 년에 걸쳐 쌓아온 기술력을 우리는 단 몇 년 만에 현장에서 몸으로 익히며 따라잡았습니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사람을 갈아 넣은 성장’이라 평가하기도 하지만, 자본도 기술도 없던 개발도상국이 선택할 수 있었던 가장 효율적인 루트이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현대건설, 대림산업(현 DL이앤씨), 삼성엔지니어링 같은 기업들이 체급을 키우며 글로벌 무대로 나갈 준비를 마쳤습니다.

이 시기 우리가 배운 가장 큰 교훈은 시스템의 중요성이었습니다. 수만 개의 부품과 수천 킬로미터의 파이프가 오차 없이 연결되어야 하는 플랜트 공정은 정밀한 관리 능력을 요구합니다. 비록 설계도는 빌려왔을지언정, 그 방대한 공사를 차질 없이 관리하고 완공해내는 공정 관리 능력만큼은 우리만의 자산으로 남았습니다. 제가 현업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리스크 관리나 공정 준수 의식도 거슬러 올라가면 이때의 경험이 유전자에 박힌 결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훗날 한국 플랜트가 설계와 구매까지 책임지는 EPC 강자로 거듭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태동기가 남긴 과제와 현재로 이어지는 유산

198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한국 플랜트 산업은 양적인 성장을 넘어 질적인 변화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단순히 인력을 많이 투입해 돈을 버는 방식은 임금 상승과 함께 한계에 부딪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시기에 구축된 석유화학, 정유, 발전 분야의 인프라는 오늘날 대한민국 산업 생태계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20년 전 제가 업계에 발을 들였을 때 마주했던 풍경들도 결국은 이 시절 선배님들이 닦아놓은 단단한 아스팔트 위였다는 것을 이제는 잘 압니다.

태동기의 역사는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화려한 기술력보다 앞선 것은 할 수 있다는 의지와 현장에서 쌓아 올린 정직한 땀방울이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발생한 과도한 노동과 기술 종속의 아픔은 우리가 극복해야 할 과제로 남았지만, 1970~80년대의 고군분투가 없었다면 지금의 ‘K-플랜트’라는 브랜드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던 나라에서 세계적인 수준의 공장을 짓기까지, 그 위대한 첫걸음은 그렇게 투박하지만 단단하게 시작되었습니다.

[국가기록원] 중동 건설 진출과 경제 발전 관련 자료들 (아래 링크)

https://www.archives.go.kr/next/newsearch/listSubjectContentArchive.do?subjectContentId=000274&pageFlag=&subjectTypeId=03&sitePage=

〈국내 플랜트 업황의 흥망성쇠〉 5부작

<국내 플랜트 업황의 흥망성쇠 1부〉0에서 일군 기적, 플랜트 산업 7080 태동기 비화

<국내 플랜트 업황의 흥망성쇠 2부〉사막에서 찾은 달러, 플랜트 수출 20년 황금기 기록

<국내 플랜트 업황의 흥망성쇠 3부〉영광 뒤의 상처, 해외 건설 수주 1위의 역설

<국내 플랜트 업황의 흥망성쇠 4부〉2016~2022 플랜트 산업 침체의 7년 진실과 재편의 서막

<국내 플랜트 업황의 흥망성쇠 5부〉2023년 이후 플랜트 산업의 대전환, 다시 시작될 성장의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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