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플랜트 업황의 흥망성쇠 3부〉영광 뒤의 상처, 해외 건설 수주 1위의 역설

해외 건설 수주

해외 건설 수주
이 이미지는 ‘Gemini’를 사용하여 제작되었습니다

우리나라 경제의 대동맥이라 불리던 플랜트 산업이 사상 최대의 호황을 누리던 시기, 역설적이게도 업계 내부에서는 가장 위태로운 균열이 발생하고 있었습니다. 20년 전 제가 업계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 느꼈던 그 뜨거웠던 열기는 2010년 전후를 기점으로 무언가 기이한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수주 잔고는 날이 갈수록 쌓여가고 언론에서는 연일 ‘해외 수주 대박’을 보도했지만, 정작 현장에서 프로젝트를 관리하던 저와 동료들의 얼굴에는 수심이 깊어지던 시절이었습니다. 3부에서는 한국 플랜트가 가장 화려하게 빛나던 순간에 왜 몰락의 씨앗이 함께 자라났는지, 그 정점과 왜곡의 시기를 되짚어보려 합니다.

해외 건설 수주의 화려한 기록 이면에 숨겨진 저가 수주의 늪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 경기가 위축되었을 때, 한국 플랜트는 오히려 독보적인 성장세를 보였습니다. 유가가 급등하면서 중동 국가들이 다시 대규모 발주를 쏟아냈고, 우리 기업들은 이를 휩쓸다시피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수주 방식은 철저히 ‘가격 경쟁’에 매몰되어 있었습니다. 선진국 건설사들이 수익성을 이유로 포기한 프로젝트들을 우리 기업들이 가져오기 시작했는데, 문제는 국내 기업들끼리 중동 현장에서 피 튀기는 제 살 깎아먹기식 경쟁을 벌였다는 점입니다.

당시 제가 지켜본 입찰 현장은 상식을 벗어난 경우가 많았습니다. 실행 원가에 간신히 맞춘 금액보다 더 낮은 가격으로 투찰하는 일이 벌어졌고,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일단 따고 나서 현장에서 원가를 절감하면 된다’는 무모한 낙관론이 지배했습니다. 이러한 저가 수주는 당장의 수주 실적은 높여주었지만, 기업의 내실을 갉아먹는 독사과와 같았습니다. 외형적인 성장에만 치중했던 해외 건설 수주의 기록들이 사실은 수익성이 담보되지 않은 숫자의 잔치였음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LSTK 계약 방식과 리스크 관리의 부재가 초래한 비극

이 시기 대부분의 프로젝트는 ‘LSTK(Lump Sum Turn Key)’ 방식으로 체결되었습니다. 이는 정해진 총액 안에서 설계, 구매, 시공을 모두 책임지는 방식인데, 공사 도중 원자재 가격이 오르거나 공기가 지연될 경우 그 모든 손실을 건설사가 떠안아야 하는 구조였습니다. 기술력이 부족했던 우리 기업들은 발주처가 제시한 불리한 독소 조항들을 제대로 걸러내지 못했습니다. 저 역시 계약서를 검토하며 과도한 책임 전가 조항들을 발견하곤 했지만, 수주가 지상 과제였던 당시 분위기 속에서 이를 강력하게 제지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경험이 부족했던 해양 플랜트와 초대형 LNG 프로젝트에 무분별하게 뛰어든 것이 화근이 되었습니다. 육상 플랜트와는 설계 난이도 자체가 다른 해양 프로젝트에서 수조 원대 손실이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설계 도면이 수천 번 바뀌고 자재 조달이 꼬이면서 공기는 무한정 늘어났고, 하루에만 수십억 원의 지체상금을 물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리스크를 관리할 전문 인력과 시스템이 부재했던 대가는 너무나도 가혹했습니다.

어닝 쇼크와 함께 무너진 K-플랜트의 신뢰도

결국 2013년을 기점으로 대형 건설사들의 ‘어닝 쇼크’가 줄을 이었습니다. 숨겨져 있던 부실 프로젝트들의 손실이 한꺼번에 회계에 반영되면서 시장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수천억 원에서 수조 원에 이르는 영업손실 보도가 이어졌고, 주가는 곤두박질쳤습니다. 제가 현장에서 만난 동료들은 밤을 새워 공기를 맞추려 발버둥 쳤지만, 이미 구조적으로 잘못된 계약의 굴레를 벗어나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땀방울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설계 기술의 격차와 리스크 관리 역량의 한계를 뼈저리게 실감하던 시기였습니다. [출처 : 연합인포맥스 ‘건설發 ‘2013 적자쇼크’…바닥은 어디일까’ (링크)]

이 시기의 실패는 단순히 금전적 손실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전 세계 발주처들 사이에서 ‘한국 기업은 싸고 빠르지만 신뢰하기 어렵다’ 혹은 ‘클레임 관리 역량이 부족하다’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내부적으로는 대규모 구조조정이 단행되었고, 숙련된 엔지니어들이 현장을 떠나거나 업계를 이탈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화려했던 해외 건설 수주의 왕좌에서 내려오는 과정은 그만큼이나 고통스럽고 참담했습니다.

GS건설 UAE 루와이스 정유공장 확장공사
GS건설 UAE 루와이스 정유공장 확장공사 (출처 : 시사저널)

성공 방식의 한계와 산업 체질 개선의 지연

우리가 이토록 처참한 실패를 겪은 본질적인 이유는 과거의 성공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장에서 옛 무기만을 고집했기 때문입니다. 1부와 2부에서 언급했던 ‘성실함’과 ‘공기 단축’은 이제 기본 사양이 되었을 뿐, 시장이 요구하는 고부가가치 엔지니어링 역량은 여전히 선진국들이 쥐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시공 분야에서는 거인이었지만, 기본 설계(FEED)나 핵심 기자재 공급이라는 두뇌 영역에서는 여전히 어린아이 수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 시기에 겪은 왜곡된 성장은 우리에게 기술 자립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워주었습니다. 단순히 남이 그려준 도면대로 잘 짓는 것만으로는 지속 가능한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수조 원의 수업료를 내고서야 배운 셈입니다. 20년 차인 저에게도 이 시절은 가장 아프지만 가장 많은 공부를 하게 했던 시기였습니다. 화려한 숫자에 현혹되지 않고 산업의 본질적인 경쟁력을 바라보는 안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몸소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정점을 지나 침체기로 향하는 무거운 발걸음

2015년 이후 유가 하락이 본격화되면서 플랜트 시장은 급격히 얼어붙었습니다. 수주 잔고는 비어가고 손실은 계속해서 불어나는 악순환 속에서, 업계는 기나긴 겨울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 시기의 실패가 플랜트 산업 전체에 대한 ‘낙인’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금융권은 플랜트를 위험 업종으로 분류했고, 유능한 젊은 인재들은 더 이상 건설사를 지망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겪은 이 정점과 왜곡의 역사는 단순히 한 산업의 부침을 넘어, 한국 경제가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겪은 가장 혹독한 성장통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상처를 어떻게 치유하고, 다시 어떤 모습으로 일어설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지점에 서게 되었습니다. 4부에서는 이 혹독한 겨울을 지내며 산업의 지형도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그리고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가 보겠습니다.

대우조선해양은 왜 망가졌을까 (아래 링크)

https://brunch.co.kr/@wanleehani/19

〈국내 플랜트 업황의 흥망성쇠〉 5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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