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세요! 시공간을 넘나들며 역사 속 ‘레전드’ 썰만 골라 배달하는 여러분의 역사 스토리텔러이자, 오늘도 ‘갓생’을 꿈꾸는 리치입니다!
오늘 우리가 만나볼 주인공은 이름만 들으면 “아, 그 할아버지!” 할 정도로 유명한 분입니다. 바로 조선 최고의 최장수 국무총리, 황희(黃喜) 정승이죠.
보통 ‘황희’ 하면 뭐가 떠오르시나요? 낡은 관복, 청렴결백, 그리고 “네 말도 옳고, 제 말도 옳다”는 이른바 ‘예스맨(?)’ 이미지가 강하죠? 하지만 오늘 제가 들려드릴 이야기는 좀 다릅니다. 이 할아버지, 파도 파도 괴담이 아니라 ‘미담’만 나오는 건 물론이고, 그 수준이 거의 ‘성인군자 멘탈 갑(甲)’ 수준이거든요.
현대 사회에서도 직장 상사가 내 옷에 커피만 쏟아도 뒷목을 잡는데, 조선시대 최고 권력자가 자기 집 노비들에게 당한(?) 기 막힌 사건들! 지금 바로 타임머신 타고 조선의 황희 정승 댁 마당으로 가보시죠. 슝~! 🚀
4편: 황희 정승의 기 막힌 노비 사랑, ‘사람이 먼저다’
1. 수염을 잡아당기는 아이들에게 웃어준 정승
조선 초기, 한양의 어느 소박한 집. 담벼락은 낮고 대문은 항상 열려 있는 이곳이 바로 당대 최고의 권력자, 영의정 황희의 집입니다. 그런데 마당 분위기가 좀 이상합니다. 엄숙해야 할 정승의 집에서 애들 자지러지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거든요.
마루에 앉아 진지하게 공문을 읽고 있는 황희 정승. 그런데 그 주위로 꼬마 애들이 너덧 명 달라붙어 있습니다. 이 아이들은 황희의 손주들이냐고요? 아뇨, 집안일을 돕는 노비들의 자식들입니다.
“할아버지! 이 털은 왜 이렇게 길어요? 잡아당겨도 돼요?” “에잇! 내가 먼저 잡을 거야!”
한 아이가 황희의 상징과도 같은 길고 하얀 수염을 덥석 잡고 쭈욱 잡아당깁니다. 옆에 있던 아이는 황희의 관자를 만지작거리고, 또 한 놈은 그의 무릎을 타고 올라가 아예 목마를 타려 합니다.
이 광경을 본 하인들이 기겁해서 달려옵니다. “아이고! 요놈들아! 어느 안전이라고 감히 정승 대감의 수염을…! 당장 내려오지 못할까!”
하인들이 아이들을 꾸짖으며 떼어내려 하자, 황희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손을 내젓습니다. “허허, 놔두게나. 아이들이 노는 데 무슨 위엄이 필요하겠는가? 내 수염이 좀 길긴 하지? 자, 마음껏 만져보려무나. 아프지 않게만 당겨다오, 허허허.”
당시 조선은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습니다. 정승의 수염을 건드린다는 건 목숨을 내놓아야 할지도 모르는 대역죄에 가까웠죠. 하지만 황희에게 수염은 그저 아이들의 장난감일 뿐이었습니다.
2. 정승의 얼굴에 오줌을 누어도 “이놈 고추가 실하구나”
이 할아버지의 관용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이 정도는 약과라는 레전드 에피소드가 하나 더 있죠.
어느 무더운 여름날 오후였습니다. 황희 정승이 나무 그늘 아래 평상에서 잠시 낮잠을 청하고 있었습니다. 입을 벌리고 기분 좋게 “드르렁~” 코까지 골며 단잠에 빠져 있었죠. 그때, 아까 수염을 당기던 노비의 어린 아들이 아장아장 걸어오더니 평상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는 잠든 황희의 얼굴 쪽으로 엉덩이를 쑥 내밀더니… “쏴아아아-“ 네, 맞습니다. 정승의 얼굴에 그대로 시원하게 실례를 해버린 겁니다!
주변에 있던 노비들은 그야말로 ‘멘붕’이 왔습니다. “히익! 이제 우리 집안은 끝났다! 대감 얼굴에 오줌이라니!”
노비가 사색이 되어 달려와 아이를 낚아채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대감! 죽여주십시오! 아이가 철이 없어 그만… 제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
잠결에 얼굴이 축축해져 눈을 뜬 황희. 소매로 얼굴을 슥 닦아내더니, 오줌 냄새를 한 번 맡고는 껄껄 웃으며 말합니다. “허허, 이놈 봐라? 오줌줄기가 아주 힘차고 매끄럽구나! 장차 큰 인물이 되겠어. 야, 이놈아! 네 고추가 아주 실하구나! 어서 아이 데려가서 씻기게나. 나도 덕분에 잠이 확 깼네, 허허.”
화는커녕 오히려 아이의 건강(?)을 칭찬해 주는 이 여유. 이쯤 되면 해탈의 경지가 아닐까 싶을 정도입니다.
3. 노비도 하늘이 낸 백성이라는 황희의 철학
사람들은 황희의 이런 모습을 보고 “너무 우유부단한 것 아니냐”, “정승으로서 체통이 없다”며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황희의 생각은 확고했습니다. 그는 신분보다 ‘사람’ 그 자체를 먼저 보았습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집안의 두 여종이 서로 심하게 싸우다가 황희에게 달려와 판결을 내려달라고 했습니다.
첫 번째 여종이 억울함을 호소합니다. “대감! 저년이 제 솥을 몰래 쓰고도 닦아놓지 않았습니다. 정말 나쁘지 않습니까?” 황희가 대답합니다. “음, 네 말이 옳다.”
그러자 옆에 있던 두 번째 여종이 펄쩍 뛰며 반박합니다. “아닙니다 대감! 제가 솥을 쓴 건 맞지만, 대신 저년의 빨래를 제가 다 해줬단 말입니다. 제가 더 억울해요!” 황희가 또 대답합니다. “음, 네 말도 옳구나.”
옆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조카가 어이가 없어 한마디 거듭니다. “숙부님, 이 사람 말이 옳으면 저 사람 말은 틀려야지요. 어찌 둘 다 옳다고 하십니까?” 황희는 조카를 보며 인자하게 웃으며 말했죠. “허허, 듣고 보니 네 말도 옳구나!”
이 ‘삼가(三可)의 설’로 유명한 일화는 단순한 결정장애(?)가 아닙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누구나 그럴만한 사정이 있다는 **’공감의 리더십’**을 보여주는 대목이죠. 그는 노비를 재산이 아닌, 자신과 똑같이 감정을 가진 ‘하늘이 낸 백성’으로 대우했던 것입니다.
4. 7년의 유배 생활이 만든 단단한 인품
하지만 여러분, 황희 정승이 처음부터 이렇게 ‘부처님’ 같았던 건 아닙니다. 사실 그는 젊은 시절 매우 강직하고 고집 센 성격이었죠.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사건은 바로 **’양녕대군 폐위 사건’**이었습니다. 태종이 큰아들 양녕을 폐하고 셋째인 충녕(훗날 세종대왕)을 세우려 할 때, 황희는 “장자를 폐하는 것은 불가하다”며 끝까지 반대하다가 결국 태종의 눈 밖에 나 7년 동안 유배 생활을 하게 됩니다.
척박한 유배지에서 백성들과 부대끼며 살았던 7년. 권력의 정점에서 밑바닥까지 떨어져 본 그 시간은 황희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높은 자리에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낮아지니 비로소 보이는구나. 저들의 고통도, 저들의 웃음도 결국 나의 것과 다르지 않음을…”
유배에서 돌아온 황희는 더 이상 고집불통 관료가 아니었습니다. 모든 것을 포용하고, 사람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는 진정한 ‘어른’이 되어 있었죠. 세종대왕이 황희를 무려 18년 동안이나 영의정으로 곁에 두었던 이유도, 바로 이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 인품’ 때문이었습니다.
💡 팩트체크(Fact Check): 기록으로 보는 황희의 성품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지만, 진짜 기록에는 어떻게 나와 있을까요?
- 『필원잡기(筆苑雜記)』의 기록: 조선 전기의 학자 서거정이 쓴 이 책에는 황희의 소탈한 성품이 아주 자세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아이들이 수염을 잡아당기고 관자를 만져도 허허 웃었다는 이야기, 노비들의 자식을 끔찍이 아꼈다는 이야기는 이 책을 통해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유명한 일화입니다.
- 『세종실록』의 평가: 실록에서는 황희에 대해 “성품이 관후(寬厚)하고 침착하며 겉모습이 소탈하여 꾸밈이 없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물론 공적인 일에서는 매우 치밀하고 공정했지만, 사적인 공간에서는 한없이 부드러운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청백리(淸白吏)의 상징: 그는 영의정이라는 최고 직위에 있었음에도 집이 비가 샐 정도로 가난했고, 손님이 오면 멍석을 깔고 대접할 만큼 검소했다고 전해집니다.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사람을 대할 때 편견이 없었던 그의 철학은 이런 청렴함에서 나온 것이기도 합니다.
마치며
오늘날 우리는 작은 실수에도 서로 날을 세우고, 자신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타인을 깎아내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600년 전 황희 정승은 최고 권력의 정점에서도 아이의 오줌 세례를 웃음으로 넘길 줄 아는 ‘진짜 여유’를 가졌습니다.
**”사람이 먼저다”**라는 말, 사실 황희 정승이 몸소 실천했던 철학이 아니었을까요? 여러분의 마음속에도 오늘 황희 정승 같은 넉넉한 웃음 한 조각이 머물길 바랍니다.
이상, 역사에 진심인 스타 블로거였습니다! 다음 편에서 더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만나요! 안녕~! 👋

